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은마아파트, 46년 만에 재건축 본격화
보일러·엘리베이터·양변기… 당시 최고급 설비 갖춰
초가집과 공존하던 은마, 강남 상징으로 변모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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00:00지금까지 생생지구촌이었습니다.
00:30자, 어떻게 보면 강남의 대명사라고 불리기도 하는 음마아파트가 유인계 표론가, 그러니까 건설 46년 만에 재건축이 추진된다 이런 얘기가 들려요.
00:58그렇죠. 46년이 말이십시 반세기만에 지어지는 건데요.
01:03최고 49층, 5,962세대, 그러니까 거의 6,000세대의 규모로 재건축 때 전망입니다.
01:11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요.
01:13강남구는 대치동 음마아파트 재건축과 관련해서 조합이 제출한 정비계획 변경안을 지난 4월 18일부터 공람했고요.
01:23조합은 정비계획 변경안에서 지상 49층, 지하 4층 규모의 공동주택, 5,962세대, 공공임대가 891세대에 포함돼 있습니다.
01:34공공분양 122세대, 그런데 부대 복리시설 조성안을 제한했거든요.
01:40제한 단계입니다.
01:42지상에는 소공원과 문화공원을 배치하고 하부에 공영주차장과 침수예방용 저류시설을 설계한 것이 특징입니다.
01:50주차장이 조성되면 대치동 학원과의 아주 심각한 주차량이 조금은 해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요.
01:57이 변경안은 전체 조합원 4,449명 중 3,903명이나 참석한 지난 1월 정기총회에서 95% 찬성으로 통과됐습니다.
02:09그런데 차영진 소장님, 음마아파트가 1998년부터 사실 재건축을 추진했다 이렇게 소개가 되던데
02:17그런데 무산된 것만도 사실 여러 차례였다고 해요.
02:20네, 그렇습니다.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.
02:27원래 96년도에 재건축에 대한 계획이 수립이 됐고 98년도에 추진위원회가 구성이 됐습니다.
02:33그런데 98년도 그 해 일단은 안전진단을 통과 못했고요.
02:382002년에도 안전진단을 탈락함으로써 재건축이 무산된 그런 사례를 우리가 과거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.
02:462010년에 안전진단을 조건부로 통과했습니다만
02:48이 또한 그다음부터 정부의 집값 안정이라든지 이런 제도를 위해서 특별히 추진되지 못했었던 그런 상황이죠.
02:57본격적으로 힘을 얻은 것은 오세훈 시장의 당선 이후부터입니다.
03:00그전에 박오순 시장 같은 경우는 원래 높은 고도를 35층으로 낮추라고 해서 추진을 못하다가
03:07이번에 오세훈 시장 당선 이후에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
03:102023년에 재건축 조합이 설립이 됐고 드디어 49층 변경안에 대한 공남이 시작됐는데
03:16이게 언제부터 승인이 들어갔었던 거냐.
03:1922년도부터 승인이 들어갔던 겁니다.
03:21그런 것이 드디어 지금 현재 2025년에 변경안 공남에 들어가면서 추진이 가능하게 됐다.
03:27이렇게 설명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.
03:29그런데 워낙 이런 우여곡절이 있다 보니까 가상의 기사도 등장하고 여러 가지 밈이나 이런 것들도 나왔다면서요.
03:36지금 저거 같네요.
03:37지금 저 사진을 자세히 보시게 되면 오른쪽에 현란한 그러한 아파트들이 보이게 있는 상태이지만
03:44우리가 왼쪽에 보면 음마아파트가 보이게 된다는 거죠.
03:47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사회는 발전하지만 음마아파트는 영원히 있을 것이다.
03:5180세가 돼도 음마아파트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79세 아이유가 저기서 노래를 부를 것이다.
03:57이런 밈도 현재 돌아다니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죠.
04:01그러니까 워낙 우여곡절이 많다 보니까 저런 패러디물까지 어떻게 보면 등장을 했다.
04:06이렇게 소개를 해주신 건데.
04:08김광석 교수님.
04:09그런데 20여 년 만에 어쨌든 간에 재건축의 첫 발을 디뎠다.
04:14이렇게 또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.
04:16그렇다 보니까 집값도 요즘 치솟고 있다.
04:18이런 얘기가 있어요.
04:19시청자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또 한편에서는 하루가 지나면 또 신고가, 또 신고가 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습니다.
04:30이런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재건축으로 인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.
04:37마침 어제 날짜로 강남구에서 음마아파트 정비계획안 변경안을 발표했습니다.
04:43이 변경안을 발표하고서 지금 신고가를 계속 기록하고 있는데
04:49지금 평당 8천만 원으로 현재 추산이 됐고요.
04:53이게 평당 역대 최고치입니다.
04:56기존 최고치가 서울 강남구, 여러분 잘 아시죠?
04:59청담 르엘.
05:007,500만 원 정도 됐었거든요.
05:02그리고 여러분 잘 아시는 반포.
05:05반포의 대장아파트라고 보는.
05:07땡땡 아파트.
05:08그렇죠.
05:08땡땡 아파트 같은 경우도 그것과 비교해도 한 2천만 원 정도 비싸거든요.
05:12역대 최고치를 계속 경험하고 있는데 이게 최근 급진전되고 있는 재건축 사업의 영향이라고 판단해 볼 수 있겠습니다.
05:20사실 이렇게 들으면 몸값이 상당한 것 같은데 그러면 도대체 강남 역사를 갖고 있는 이 음마아파트는 어떤 곳입니까?
05:28지금은 아마도 가장 낡은 아파트의 대명사로 돼 있지만 워낙 오래됐기 때문에요.
05:35그 당시에는 혁신적이었습니다.
05:38일단 1979년도에 28개동 4,424세대 단지로 돼 있는데요.
05:444통 8달대로에서 아주 깨끗한 곳이었고요.
05:48당시만 해도 보일러와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신식 아파트가 몹시 드물었거든요.
05:53한강 아파트나 현대아파트도 계단으로 올라갔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장착을 했고요.
05:59수도 또한 혁신적이어서 1980년도 후반까지도 푸세식이라고 하는 옛날 구식, 입식 변기가 나타났는데 또 구둘장도 있었거든요.
06:09그런데 이 음마아파트는 도시가스에 온돌난방을 설치를 해서 구경한 사람마다 다들 너무 좋겠다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.
06:17구조 또한 선진적이어서요. 당대에는 30평 초중반에 극히 드물었던 3베이 설계, 3베이 설계라고 하죠?
06:24늘 만들어갔고요.
06:26이런 설계가 보편적인 아파트, 신흥아파트에 도이기 시작을 했고.
06:32저평연두군요.
06:33그렇죠. 저렇게 돼 있고요.
06:35그 전까지만 해도 3베이 설계는 최종 30평대 후반부터나 가능한 거였거든요.
06:41그런데 이제는 작은 평수에서도 가능하게 돼 있고.
06:43국민 평수는 2베이 설계가 일반적이었는데 면적이 30평, 저는 평형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.
06:5135평은 두 가지인데 4인 가족이 살기 적당한 84평범위터 구조는 침실 3개, 화장실 2개로 해서 이런 건 당시부터 굉장히 혁신적이었습니다.
07:03하지만 최신식 아파트 치고는 당시에는 굉장히 시골스러웠어요.
07:08주변에 둘러볼 데가 별로 없었고요.
07:10첫 3년은 주변에 큰 도로뿐 아무것도 없어서 지금 사진 보이시죠?
07:16완전히 무슨 비닐하우스도 있고요.
07:18옛날 영화나 대한니우스에 나오는 이런 장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조감도를 그릴 때 논밭이 주변 풍경일 정도였습니다.
07:30고 김태균 작가가 1981년에 지금 서울 음마 아파트의 모습은 초가집과 함께 공존하던 그런 모습이었습니다.
07:39그러니까 당시 아파트가 저렇게 지어졌지만 주변 풍경은 논과 밭에 저렇게 소까지 있었던 굉장히 어색한 풍경의 아파트였다라는 설명이신 건데
07:48그런데 이 정도의 아파트, 물론 소가 있고 앞에 지나다니긴 하지만 말씀해 주신 3베이의 어마어마한 아파트는 당시 인기가 꽤 있었을 것 같은데요.
07:59아파트에서 연탄으로 난방했다는 게 상상이 가십니까?
08:03연탄으로요?
08:04네. 음마 아파트가 있었을 당시에, 지어질 당시에 인근의 일부 주공 아파트 같은 경우는 연탄으로 우리가 난방을 했었어요.
08:13아파트인데도 공동화장실이 있는 곳이 있었어요.
08:16옥인동 아파트가 있습니다.
08:18강남으로 따진데도 강남에는 주공만 하더라도 당시에 그런 아파트들이었습니다.
08:24그런데 그런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름 보일러가 들어가고 대규모 단지가 들어간 거죠.
08:31물론 논밭 사이에 있긴 했었습니다만 저 때 당시 분위기는 우리가 이쪽에서 찍었을 때는 논이지만
08:36이쪽 압구정동에서 넘어간 쪽으로 보면 도로가 개선이 잘 돼 있고 또 기반시설이 잘 돼 있거든요.
08:42중간에 이제 학교들도 좀 있고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보는 방향에 따라 좀 달라질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.
08:48일단 그것이 이제 가격에 반영된 상황이다라고 좀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요.
08:5170년대에 우리가 이제 대략적인 평당 가격이 한 3, 4만 원 정도 했었는데 평당 분양가가 68만 원이었습니다.
08:59그런데 이게 분양이 됐다라는 거죠.
09:01물론 처음에는 즉각 분양되지는 않았었습니다.
09:04그런데 여기서 지금 이제 그리고 조건도 까다로웠어요.
09:08우리가 청약 부금이라든지 제형저축을 가입해서 당시에 80만 원이 모였어야 됩니다.
09:156회 이상 납입을 하고 당시에 80만 원이 모인 사람만 청약이 가능했기 때문에
09:20누구나 청약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.
09:22그런데 79년 입주를 딱 받아보니까 초반 흥행은 잘 안 됐습니다.
09:27당시만 해도 말씀드린 것처럼 거리가 멀고 우리가 그때 당시만 해도 마이카 시대가 아니지 않았습니까?
09:32그런데 그런데 우리가 이제 2차 석유 파동 이후에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확 올라오면서
09:382차 석유 파동 이후에 불과 20일 만에 완판이 돼버렸습니다.
09:42그러면서 현재 됐는데 이게 지금 그때 당시에 우리가 평당 68만 원, 2천만 원을 분양했는데
09:48체감이 어느 정도냐? 라면 가격으로 비교하면 대략 한 20배 올랐으니까
09:52우리가 2천만 원에 20배면 대략 4억 정도에 분양을 한 거니까
09:57그렇게 비싸다는 느낌은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.
09:59그런데 강북산은 당시에 강북의 부유층들이 사는 입장에서 보면
10:04내가 4억이나 주고 저 시골 가서 살아? 라는 그런 개념이었는데
10:08지금은 무려 35억까지 올라간 그런 상황이다.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.
10:12그러니까 한쪽은 논박뷰, 한쪽은 도시비였던 당시 음마아파트가
10:18그런 또 인기가 있었다라는 설명을 해주셨는데
10:21바로 이 음마아파트로요. 대기업 반열에 오른 기업이 있었다고요?
10:26네. 여러분 아마 대기업 회장님 하면 상징처럼 따라다니는 표현 중에
10:32사과상자, 뇌물을 뜻하죠. 또 휠체어 회장님.
10:36이 유래가 바로 한보그룹입니다.
10:38그렇죠.
10:39당시 한보그룹이 원래 정태수 회장께서는 원래는 세무 공무원이었어요.
10:45그런데 처자식을 살림살이를 하는데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을 느끼고
10:51무속인을 찾아갔는데 그 무속인이 회사로 회사를 차려라.
10:56그 말 듣고 회사를 차렸습니다. 그게 한보상사였고요.
11:00또 한보 주택을 설립을 했습니다. 이때 음마아파트, 미도아파트 이런 여러 아파트를 만들었는데
11:08당시 음마아파트로 단숨에 2천억 원을 거머쥐습니다.
11:12당시 평균 급여가 50만 원이 채 안 되던 시절이었습니다.
11:162천억 원은 어마어마한 규모고.
11:19조단이네요.
11:20그렇죠. 그때 대기업 반열에 올랐습니다.
11:23재미있었던 것은 지금 자료 보시잖아요.
11:24이게 음마아파트 상가입니다. 왼쪽에 있는 게.
11:28이 음마아파트 3층, 상가 3층에 한보주택의 본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.
11:34아, 그래요?
11:34당시에 많은 신입사원이나 이렇게 이 기업을 찾아갈 때
11:38도대체 이 한보 그룹 어디 있는 거야?
11:41뺑뺑 돌다가 결국 그 상가 3층에 있었다는 사실.
11:45아, 상가에 있을 줄은 몰랐다?
11:47몰랐던 사실. 그리고 당연히 이런 건설업이라든가 이런 업을 하다 보면
11:52뇌물을 많이 주고받았었는데
11:54사과 상자에 만 원짜리 지폐를 가득 담아서 줄 때는
11:59특별한 사과입니다라고 했던 표현이 있었고
12:02그거보다 조금 덜한 어떤 뇌물 같은 것을 줄 때는
12:07골프 가방에 준다든가 한 1억 정도 담겨있고
12:10이런 사과 상자의 역사가 있었고
12:13후대에 많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
12:16회장이 또 연배가 드셨죠, 보시는 것처럼
12:19그때 이제 휠체어를 타고 출두하는
12:22휠체어와 마스크 차림으로 출두하는
12:25소위 재벌 수사의 어떤 상징적인 장면처럼
12:28남겨져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.
12:30자, 이렇게 파란만장한 시대를 관통해온
12:33음마아파트가 자리한 강남은요.
12:36그러면 언제부터 도대체 강남이었을까
12:39이 부분이 궁금해지는데요.
12:41관련돼서 영상이 하나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.
12:43보고 오시죠.
12:45앞으로 24년 동안에 걸쳐 시행될
12:48새서울 도시 계획은 변두리의 새로운 시가지를 만들어
12:51이 나라 정치, 경제, 문화의 중심인
12:54초현대식 도시 건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.
12:58그러니까 이게 1966년 뉴스인데
13:01여기서 나왔던 아까 그 도시 계획은
13:04변두리의 새로운 시가지를 짓는다.
13:07이 변두리가 지칭하는 데가 강남인 거예요?
13:09강남입니다.
13:11알짜배기 강남 지역은 그때는 변두리였던 거죠.
13:14그래요?
13:14강남의 역사를 보면 한국 현대사를 알 수 있고요.
13:18지금부터 제가 전해드리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.
13:23왜냐하면 지금 반포 주공 아파트 재건축도 난리인데
13:27그때 구반포는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갖추지 못한 동네였어요.
13:3360년대 압구정동 강변 역시 한강 어느 줄기에 남쪽에 불과했고요.
13:39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세워진 것도 1970년대 말이기 때문에
13:42그때도 정말 이름 없는 곳이었고
13:441977 논현동, 압구정, 반포동, 양재동 일대는 한적한 농촌이었습니다.
13:50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는 거였고요.
13:55지금 잠원동, 잘 나가는 신반보 잠원동은 뽕밭이에요.
13:59잠이 번데기 잠자, 이건 뭐죠.
14:04압구정동은 배나무 꼴이었고요.
14:06도곡동은 도라지.
14:08이렇게 비싼 곳일 줄 알았으면 그때...
14:10왜냐하면 1963년도에 강남 부자의 서쪽은 경기도 시흥이었고
14:16동쪽은 경기도 광주에 속해 있었던 만큼
14:19행정구역은 사실 경기도에 더 가까운 곳이었거든요.
14:22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도 있었지만
14:25말죽거리라고 불려서 마을들에게 먹이를 먹이는 곳이 서초동입니다.
14:29아, 그래요?
14:31그때 왜 부모님은 땅을 안 사주실 수 없죠?
14:34계속 후회만 하시는...
14:36하지만 1963년부터 75년 서울이 확장됨에 따라 뉴스에 나오듯이
14:41처음으로 영등포구와 성동구로 편입됐어요, 강남 일부 지역이.
14:45그리고 1975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에 관악구, 강남구가 탄생하게 됐습니다.
14:51강남구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 과거 시민들은 강남 지역을 영동이라고 불렸어요.
14:58영동이요?
14:59네, 영동호텔도 있고 영동 개발도 있고 다 있지 않아요.
15:02그 이유가 뭐냐면 한강 이남 지역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영등포로 알았는데
15:07영등포의 동쪽이라고 해서 영동이라고 했다고.
15:11그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었던.
15:13아주 미미했던 곳이죠.
15:15뿜밭이었는데요, 배나무밭이고.
15:18그리고 그게 이 지역이 경부선과 경리선 철도의 분기점이기 때문에
15:24또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요.
15:25영등포는 일찍부터 발전했고 공장이 되게 많았잖아요.
15:29지금도 공장도 남아있긴 했지만 주거지도 대규모로 개발됐는데
15:33한강 이남의 잘나가는 지역이었던 영등포 옆에 있는 지역임을 강조하기 위해서
15:39영등포의 동쪽이에요.
15:41여기도 발전할 거예요.
15:42이런 상징적인 의미가 붙여졌고.
15:45이게 영동의 시작이었고 그만큼 강남구의 위상이 당시에는 매우 낮았습니다.
15:50그런데 이렇게 어쨌든 간에 영동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었고
15:56또 과거에 변두리로 지칭되던 이 강남이 갑자기 그럼 왜 개발붐이 일게 된 겁니까?
16:02네. 개발붐이 일어난 것은 인구라는 단어와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.
16:06물론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는 저출산 국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
16:14당시는 소위 베이비붐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베이비붐 현상이 일어났던 그런 시점입니다.
16:21그러니까 인구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
16:24어느 위치로 우리가 자리를 잡습니까? 주거를.
16:28주로 일자리와 가까이.
16:29그렇죠.
16:30그러니까 일자리가 주로 서울 강북구에 일자리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
16:33이쪽을 향해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왔었습니다.
16:36정말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는데
16:39그런데 강북 지역에서 이 모든 인구를 수용할 수가 없는 거예요.
16:44당시 박정희 대통령 같은 경우도 이게 굉장히 골칫거리였습니다.
16:48이거 어떻게 하지?
16:49그러다가 이 강북 지역은 말이죠.
16:52600년부터 이미 인구가 머물던 지역입니다.
16:55그런데 그런 지역을 다시 개발하고 하기에는 엄청난 개발비가 드니까
17:00상대적으로 당시 변두리였던 강남 지역에 적극적으로 도시 개발을 착수하고
17:06주거 지역을 형성시키고 해나갔던 것이죠.
17:09거기에 더불어서 팔당댐이라든가 또 소양강댐이라든가
17:14이런 댐 건설을 통해서 상대적으로 식수라든가 이런 것들이 해결이 될 수 있었고
17:20그 밖의 각종 정부 기관들도 강남 지역으로 배치되면서
17:24지금에 있는 예를 들어서 서초동에 있는 혹은 그 밑에 지역에 있는
17:28많은 공공기관들도 들어서면서 더 좋은 주거 환경이 형성되는
17:35그런 과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.
17:37그렇군요. 지금 팔당댐 중곤 씨 영상도 잠깐 나왔었는데
17:40그런데 이런 강남을 개발하게 된 얘기를요.
17:45다음은 또 한 영화가 있다고 합니다.
17:47이 영화에서는 정치 자금 문제가 관련이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
17:51일단 영상부터 한번 볼까요?
17:56강남의 땅 좀 산다고 그 많은 대선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까요?
18:01저걸 강남으로 옮기면 어때?
18:02차영수 씨 저 얘기가 그럴 듯하게 들리긴 하는데 이게 어디까지가 좀 사실이에요?
18:11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부 사실인 것은 우리가 어떤 한 분의 증언에 의해서 판명이 된 건 있습니다.
18:17우리가 이제 강남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재 지금 경북 고수도로 이쪽에 영동 지역 1지역 2지구 개발을 하는데
18:271지구 같은 경우는 도심 기능을 하고 2지구는 주택 지역을 하는데 도심 지구 하는 것을 정부 돈을 일단 먼저 샀다라는 거죠.
18:35그리고 이제 개발 계획이 발표된 뒤에 이걸 대략 한 20억가량에 팔아가지고 이것을 정치 자금으로 썼다 이런 얘기들을 어느 누가 했냐라면
18:42당시에 서울시 도시계획국에 일하셨던 한 교수님이 서울 도시계획이야기라는 책에 증언을 한 바가 있습니다.
18:50그러니까 이제 이번에 단순 증언으로 현재 지금 알려져 있는 상황인데
18:52우리가 흔히 그냥 정치 자금으로 들어간 거 아니냐라는 것에 대한 어떤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니겠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.
18:59자 이렇게 뭐 강남 개발은 시작을 했지만 그런데 본격적으로 강남을 개발하게 된 도화선이 따로 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.
19:07그러니까 앞서 언급드렸다시피 교수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이제 공공기관에 대한 이전 이런 부분들도 있었고요.
19:12그 다음에 이제 우리가 저쪽 경상도 쪽에 이제 도시공업단지를 짓다 보니까 서울과 연결해야 되니까 경북 고수도로가 68년에 건설된 거 아니겠습니까?
19:21그리고 관문으로서의 이제 우리가 강남 개발이 이루어졌다라고 좀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.
19:26저도 이제 기억이 나는데요. 저희 부모님 지인 중에 한 분이 공공기관에 일하다가 강남으로 이주를 하셔야 되는 거예요.
19:32굉장히 불만을 토로하셨던 내가 저기 가서 어떻게 살아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집도 주고 다 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상황이 바뀌었던 그런 에피소드도 기억이 난다라고 좀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.
19:43당시에는 공중전화도 없었었는데요.
19:44그런 것들이 깔리고 일단 도시 기반 하에 논밭에 이런 것들이 깔리면서 전반적으로 됐고 취득세 면제라든지 다양한 공공기관에 대한 부분들이 하면서
19:53원래 우리가 지금 강남이 이렇게 강북 대비해서 집값이 올라간 것이 계획된 도시였다라는 것들 이런 부분들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기 때문에
20:02당시에 그런 부분들이 있었고 지금 표에서 보는 것처럼 용산구가 7.5배 오를 동안에 압구정동은 25배가 올랐고
20:09신사동은 대략 한 50배가 올랐으니까 서울 집값의 상승은 어마어마하게 이루어진 부분들이었다.
20:15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.
20:17이렇게 개발은 됐지만 그런데 정작 강남으로 이주하는 인구는 그렇게 썩 많지는 않았다고 해요.
20:22우리가 주거지를 옮기는 것은 쉽지 않지 않습니까?
20:26뭔가 특단의 조치가 있을 때만이 우리가 옮길 수 있는 것인데
20:30당연히 강북 지역에서 600년 역사가 있었는데 그 주거지를 떠나서 강남으로 이동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.
20:38그것을 유인하기 위한 어떤 대책들을 마련했는데요.
20:42가장 대표적인 대책들이 첫 번째 강북 억제책입니다.
20:45강북 지역에 살지 마라 하는 억제책을 마련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흥시설 허가를 깜깜하게 하고요.
20:53또 여러 이전 같은 것도 금하고요.
20:56대학이라든가 백화점 설립도 제재 조치를 많이 강했습니다.
21:00대신에 강남을 유인하는 유인책을 마련합니다.
21:04강남으로 이주할 경우 영업세, 등록세, 취득세, 도시계획세, 면허세 이런 것들이 다 면제가 되니까 각종 지원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강남으로 이동하게 됐었고요.
21:14특히 강북에 위치했었던 명문고등학교들 아마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경기고, 휘문고, 서울고, 경기요고 이런 고등학교들이 많이 이전했고 고속터미날도 이전했고 지하철 2호선이 건립됐고 이런 것들이 강남 유인책으로 야기됐던 사안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.
21:35그런데 이런 정부 정책으로 강남이요.
21:38그런데 그야말로 유흥의 대명사가 됐다고 합니다.
21:41당시 강남을 그린 노래도 있었죠?
21:43네, 일단 우리에게 국민 가수로 성장하게 된 주현미 씨가 신사동 그 사람을 무시할 수 없죠.
21:51강남구 신사동인데 진짜 아마 다들 기억이 나실까요?
21:56밤비 내리는 회로 나오고 했는데요.
21:58그런데 왜 강남구 일대에 이때 강구가 억제책이 되면서 또 1982년도에 야간 통행 금지가 해제됐습니다.
22:09갈 데가 없잖아요.
22:11그때 널널한 강남으로 다 유흥 없어서 옮겨간 거죠.
22:14술집, 룸살롬, 호텔, 그 다음에 흔히 말하는 러브 호텔 다 옮겨가다 보니까 벅적벅적 되게 되고 회식도 거기서 하고 불륜의 온상지가 되기도 할 만큼 강남이 반짝반짝거리는 불라성의 시대가 됐고요.
22:29또 비내리는 영동교라는 노래도 나와서 정통 트로트인데 정은희 남곡인 부부가 이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서 강남의 유흥가 분위기를 주제로 한 신사동 그 사람을 만들어서 주현미 씨 인기가 놀라졌죠.
22:43그리고 강남에 또 새로운 강남 분위기를 밝게 한 데 기여한 사람이 싸이 씨예요.
22:50싸이 씨는 강남에서 태어났고 강남에서 자랐는데 강남 사일까지 불러서 글로벌 스타로 올라가게 됐습니다.
22:57어쨌든 간에 이렇게 또 불리하성을 이뤘으면 기대한 대로 인구는 좀 늘었을 것 같은데요.
23:03전반적으로 인구가 많이 늘어났습니다.
23:04특히 이제 앞서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학교가 이전됐죠.
23:08가장 대표적인 게 경기고등학교, 그 다음에 이제 서울고등학교 이런 것들이 됐는데 이게 학군제를 통해서 아무래도 이전을 하다 보니까 학군제로 시행이 됐다는 거죠.
23:18학군제는 인근 고등학교를 인근의 학교인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부분들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 이러면서 이 명문고등학교 소위 명문고등학교를
23:27당시 8학교들 옮겼는데 84년도에 어떤 일이 벌어졌냐라면 서울대에 영동고랑 경기고가 각각 70명, 학문고 뭐 이러한 것들이 한 3, 40명씩 보내다 보니까
23:38강남에 있는 고등학교가 84년도에 서울대학을 무려 480명 이상 보냈습니다.
23:43그러다 보니까 많은 학부형들이 강남으로 가자.
23:47그런데 당시에 여기 1년 이상 거주를 해야만 그 학교를 갈 수 있는 거거든요.
23:51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제 한때 사회 문제가 됐던 위장전임 문제도 불거지면서 하나의 사회 이슈를 만들어내면서
23:56수많은 분들이 오히려 강남에 거주를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.
24:02이렇게 말씀드리시겠습니다.
24:04그러니까 8학군제가 여기서 나온 얘기인 것 같은데 이 8학군제가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강남 집값도 또 올렸을 것 같은데요.
24:11네,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자리를 찾아 또 이동하기도 하지만 교육을 찾아 이동하기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?
24:19많은 분들이 주거지를 선택할 때 어느 지역이 또 교육이 충분히 좋은가.
24:24그러니까 역시 교육렬이 너무나 높다 보니까 대표적인 학원가로 일컬어지고 있는 대치동 일대 바로 8학군 신화가 형성이 됐고요.
24:33사교육특구가 조성된 바로 대표적인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.
24:37당시에 1989년 2월 당시인데요. 51평형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2억 9천만 원이었는데 보름 사이에 3천만 원이 상승한다든가
24:48정말 한 달 사이에 12%, 한 5천만 원 정도 상승한다든가 그 당시에도 그런 일들이, 그 당시 평균 월급이 45만 원이었으니까요.
24:58그 당시에도 이 정도로 상승했으니까 어마어마한 상승세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.
25:01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강남 집값이, 강북과는 좀 큰 차이가 없었다는데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강남 집값이 폭등하게 된 거예요?
25:09가장 대표적으로 88년도 올림픽이 있었을 때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강남 개발이 착수됐었고 또 재건축이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하면서
25:20앞에서도 계속 말씀하셨지만 강북 집값 상승세보다 강남 집값 상승세가 월등히 높기 때문에 소위 그런 것이 양극화를 또 만드는 배경이 되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.
25:32그러면 짧게 여쭤보면 이 강남 불폐 신화는 언제까지 지속될 거라고 보십니까?
25:39안타깝게도 인구 감소의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형용사가 붙어 있지만
25:47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정 지역, 특정 권역의 경우에는 인구가 감소하기보다는 인구가 더 유입되기도 합니다.
25:55그런 것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서울 수도권이나 그 밖의 나머지 지역 간의 양극화 현상은 더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전망도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.
26:07또 이렇게 음마아파트로 돌아본 강남의 몰랐던 이야기 한번 살펴봤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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